소싸움가이드
인간과의 관계
인류와 공존해 온 소는 농경과 운송의 핵심 동력이자 신성한 숭배의 대상으로서 인류의 생존과 문명 발달을 이끌어왔습니다. 오늘날에는 식량 자원을 넘어 투우와 같은 독특한 민속 문화로 자리 잡으며 인간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소와 인간과의 관계의 기원
가장 오래된 집소의 흔적은 메소포타미아의 모술 근처에 있는 알파차에서 발견된 BC 4500년경 할라프기(期)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소의 가축화는 아마도 이보다 이른 BC 5000년경에 서아시아의 이 지방에서 처음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이른 시대에 이미 개·양·염소·돼지가 가축화되어 있었으므로, 그 사육 경험을 바탕으로 소를 가축화한 것이다. 대형 가축을 사육하려면 소형 가축보다 충분한 사료가 확보되어야 하고, 사육에 필요한 인간 사회의 조직이 전제되어야 한다. 소의 가축화가 서아시아의 알파차에서 이루어진 것은 그 당시 이미 이 곳에 농업과 농촌사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의 소의 가치
일반적으로 고대 농경사회에서 소는 농경에 이용하기 위하여 도살을 금지하였으며, 쇠고기를 먹는 것도 금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소를 신들의 사자(使者)로 여겨 도살을 금지하였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집소는 풍년을 가져오는 농경 여신의 신성한 짐승으로 숭배되어 일반적으로 도살이 금지되었으며,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에만 제물로 바쳐졌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소가 결실의 신인 이시스 여신의 신성한 짐승으로 숭배되어, 전국의 소 중에서 아피스라고 하는 1마리의 소가 선발되어 여신의 신전에서 일정 기간 사육된 뒤 국민의 신앙 대상이 되었으며, 나일강의 범람이 시작되기 직전에 제사의 제물로 이용되었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소를 신성시하여 그 고기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소에 상처를 주는 일조차 꺼렸다. 힌두교도는 흉년이 들어도 소를 죽여 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를 이용하는 동아프리카의 유목민은 소를 특히 소중히 여겨 물건을 교환할 때도 소보다 여자로 바꾸었으며, 바통가인 등은 위쪽 앞니를 빼어 자기의 얼굴이 소를 닮게 함으로써 성인이 된 것으로 간주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소와 인간의 양식 (유제품)
그 후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에서는 《구약성서》의 창세기 제18장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유 외에 치즈도 이용되고 있었다. 이집트에서도 그 역사가 오래되어 제11왕조(BC 2100년경)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 유럽에서는 청동기시대(BC 2000년 이후)에 비로소 우유가 산유(酸乳)로 사용되었고, 치즈나 버터는 오히려 로마시대에 이르러 로마인에 의해 그 제조법이 전해졌다.
한편, 인도에서도 BC 2000년경에 이란에서 침입해 온 아리아인이 우유와 치즈의 이용법을 전하였다. 중국에서는 아리아인이 우유와 치즈의 이용법을 전하기 전에 인도나 서남아시아 지방에서 집소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유의 이용이 일반적인 습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불전(佛典)에 나와 있는 우유나 치즈의 자양적(滋養的) 효과가 전해지면서 약용하게 되었다.
소의 다양한 역할
집소는 옛날부터 농경에 이용되었으며, 이로써 농경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이미 고대 이탈리아의 청동기시대나 바빌론 시대, 이집트의 구왕조시대에 집소는 논밭에서 쟁기를 끌었고, 씨를 뿌린 밭을 밟아 씨를 땅 속에 묻게 하는 작업에 이용되었다. 쟁기를 끄는 소는 주로 수소였는데, 발정기가 되면 성질이 거칠어져 일을 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에서는 일하는 수소를 미리 거세 하였다.
서아시아에서는 말이 가축화될 때까지 집소가 주로 수레를 끌었다. BC 4000년경에 수메르인은 2마리의 소에게 전차(戰車)를 끌게 하였다. 2마리가 수레를 끄는 형식은 고대에 소가 쟁기를 끌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그후 말이 수레를 끌게 된 후에도 이 형식이 그대로 사용되어, 서유럽이나 동양의 마차는 2마리가 끄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후 말은 주로 군대에서 사용하였지만, 일반 서민층에서는 소가 끄는 수레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였다.
투우(鬪牛)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사(神事)로서 발생하였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도 일찍부터 있었고, 8세기에 무어인이 북아프리카에서 에스파냐로 이것을 전한 후 오늘날 에스파냐의 국기(國技)가 되었다.